효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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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李종) [1432(세종 14) ~ 1476(성종 7)]

휘는 종(종), 자는 유안(幼安), 시호는 양경(襄頃). 대군의 손자로 보성군 갑(갑)의 차남이다. 어려서부터 글읽기를 좋아하고 말타고 활쏘기를 즐겨하여 종실의 촉망을 받아 품계가 높았다. 1460년(세조 6) 종친 중에 학식과 무예가 출중한 사람을 뽑아 진종(陳宗)과 사종(射宗)을 삼을 때 입선하고, 늘 무예를 연마하며 사열할 때는 대장으로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았다. 평안도 지역에 자주 침범하여 백성들의 인명을 살상하고 재산을 약탈하는 야인(野人) 무리를 무찌르라는 어명을 받고, 요충지인 방산진(方山鎭)에 나가 지략과 용기를 다하여 야인을 근절시키는 데 많은 공을 세웠다. 1467년(세조 13) 5월에 장용대장 대호군이 되었다. 이 때 마침 이시애가 모반을 일으키자, 그 해 7월 임금은 경회루 아래에 모든 재상과 승지들을 불러 병사(兵事)를 의논하는 자리에서 공에게 총통대장(銃筒大將)을 배명하였다. 공은 민발(閔發), 정종(鄭種), 우공(禹貢), 류흥무(柳興茂), 정준(鄭浚) 등을 부장으로 삼아 총통군 1,350명을 거느리고 출정, 도총사 구성군(龜城君) 준(浚)의 휘하에서 싸워 큰 공을 세웠다. 이 일로 정충적개공신(精忠敵愾功臣) 율원군(栗元君)에 봉해지고 함길도 병마수군절도사가 되었으며 단서철권(丹書鐵券)이 내려졌다. 1466년(세조 12) 12월 공이 임지에서 병을 얻었다는 주달(奏達)을 접한 임금은 매우 근심하고 내의(內醫) 차득참(車得참)을 보내어 병을 치료하게 하였다. 1468년(세조 14) 병으로 소환되었다. 1476년(성종 7) 1월 18일 별세하자 조정에서는 치제와 예장을 베풀고 ‘양경’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묘소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왕릉골에 있다. 이수원(李壽源)이 찬한 신도비와 사당은 부조묘(不조廟)로 있다. 재실 이름은 충의재(忠義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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