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화면  청권소식  이달의 인물
   
 
 
 
 
번호 제 목 글 쓴 이 파 일 등 록 일 조 회 수
30      이강년(李康秊) 도창의대장(都倡義大將) [운강공(雲崗公)]  청권사 2015-07-02 7190
     
  [1858(철종9)1908(순종2)]

자는 낙인(樂寅), 호는 운강(雲崗). 대군의 18대손으로 기태(起台)의 아들이다. 류인석(柳麟錫)의 문인으로 기개가 있고 담력이 컸으며 문사에도 능했다.
1880년(고종17) 무과에 급제하여 행 용양위 부사과로 선전관을 지내고 1884년(고종21) 갑신변정이 일어나자 사직하고 낙향, 1894년 동학농민운동 때 문경 일대의 동학군을 지휘하여 왜병과 탐관오리들을 무찌르기도 했다. 1895년(고종32)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분연히 의병을 일으켜 안동관찰사 김석중(金奭中) 등 부일관리를 처벌하고 이어 마고산성에서 문경 주둔 일본군과 접전, 적군의 수괴를 사살하는 등 전과를 세웠다. 1896년 1월 29일 300여 의병을 이끌고 제천 류인석의 병진에 합류, 유격장이 되어 수안보에 있는 적의 병참기지를 공격하고 조령관문을 차단, 병기고를 습격하여 무기를 노획하는 등 많은 전과를 올렸다. 같은 해 4월 제천전투의 참패로 의병진이 해산되고 류인석의 뒤를 따라 만주로 건너가 무송·집안·통화 등지에서 활약하다가 3년 뒤에 귀국, 단양 금채동에 머물면서 다시 창의를 준비했다.
1905년(광무9) 을사조약이 맺어지고 1907년(순종1) 헤이그 특사사건으로 고종태황제가 강제 선위되고 정미7조약으로 군대가 해산되는 등 일제의 침략이 노골화되자 영춘에서 다시 창의하여 원주의 민긍호(閔肯鎬) 의병진과 합세, 원주 무기소에서 많은 무기를 얻고 충주를 공격하고 이어 제천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이 해 7월에 고종태황제로부터 도체찰사 밀지를 제수받고 또 같은 달 제천 의림지에서 40여 의병진이 모여 도창의대장에 추대되어 초곡·문경·갈평 등지에서 왜병을 크게 무찌르고 그 범위를 경상·충청·강원·경기지역으로 넓혀가면서 싸우는 곳마다 많은 전과를 거두었다. 같은 해 겨울 서울 진공작전의 실패로 가평 광악산에서 용소동·백담사·양양 그리고 4월에는 안동 서벽에서, 5월에는 봉화 재산 등 전투에서 탁월한 전법으로 크게 이겼으나 6월 4일 청풍 작성 금수산 전투에서 적의 피습을 받아 복사뼈에 총을 맞고 체포됨으로써 13년간의 항일 의병운동을 마감하고 10월 13일 서대문 감옥에서 교수형으로 순국했다.
1962년 건국공로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고 갈평에 전승비, 왕릉 역전에 기념비, 제천 의림지에 전적추모비, 가은 완장리에 기적비, 독립기념관에 시비 등이 세워졌다. 사단법인 청권사가 간행한 <국역 운강 이강년 전집>·일대기를 소설로 쓴 <의병대장 운강 이강년>이 있다.
묘소는 경북 상주시 화북면 입석리에 있다. 2002년 3월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에 의충사를 세웠다.
 
 
  이전글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