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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권(淸權)이란 주(周)나라의 태왕(太王)이 맏아들 태백(泰伯)과 둘째아들 우중(虞仲)을 두고, 셋째아들 계력(季歷)에게 왕위를 물
려 주려하자, 태백과 우중 두 형제는 부왕의 뜻을 알고, 형만(荊蠻)으로 가서 삭발(削髮) 문신(紋身) 은거(隱居)하며 왕위를 사양한
일을 후일에 공자 (孔子)께서 태백을 ‘지덕(至德)’, 우중을 ‘청권(淸權)’이라고 칭찬하였다.
양녕대군께서 세자의 자리를 양위하시자, 효령대군께서도 충녕대군(세종대왕)에게 성덕이 있음을 아시고 가부좌로 합장하며 왕위를 겸손하게 사양하셨다. 주(周)나라를 떠나서 삭발ㆍ문신ㆍ은거한 태백과 우중의 처신과, 왕위를 선양하면서도 충ㆍ효에 지극하셨던 양녕ㆍ효령대군의 처신과 사상이야말로 태백과 우중보다 더 높고, 넓고, 차원이 다르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세종대왕(世宗大王)께서도 희우정(喜雨亭)의 사패문(賜牌文)에 이르시기를 ‘태백과 우중은 주나라에 어진 분이시다. 능히 천하를
양보하고 문신한 채 형만에서 살면서 인(仁)을 이루어 공자께서 칭찬한 것이다. 수 천년이 지난 후 그 이름을 듣고 그 의로움을 우
러렀으나 아득히 그 사람을 보지 못하였더니 이제 양녕(讓寧)과 효령(孝寧) 두 대군에게서 본다. 양 대군은 곧 나의 형님이시다’ 라
칭송하셨다. 이러한 연유와 유래가 근거되어 정조대왕이 효령대군의 사당을 청권사(淸權祠)라고 사액(賜額)하셨다.

또한, 종묘 배향(宗廟配享)을 청하는 소(疏)에 수 백년 동안 양녕ㆍ효령 두 대군이 아름답게 쌍으로 지덕과 청권은 형이요 아우라고 기록되어있다.